AI는 해고보다 신입 공고에서 먼저 온다
몇 해 전만 해도 ‘AI 시대의 새 직업’으로 불리던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우리 판정에서는 가장 먼저 줄어드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나왔다. 프롬프트를 다듬는 일은 모델이 스스로 하게 되고, 남는 일은 기존 직군이 흡수한다는 판단이다. AI가 만든 직업을 AI가 먼저 가져가는 셈이니 아이러니다. 그런데 87개 직업의 기록을 끝까지 읽고 나면 더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따로 있다. 줄어드는 것이 지금 일하는 사람의 자리보다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의 자리라는 점이다.
87개, 생각보다 넓은 앞줄
한국 752개 직업 가운데 87개, 열 개 중 하나 꼴인 11.6%가 위험도 ‘매우 높음’이다. AI 때문에 사람 채용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하는 때를 3년 안으로 본 직업들이다. 결과 화면의 예상 시점으로는 2027년 3월부터 2029년 4월 사이에 몰려 있다. 그 바로 뒤의 ‘높음’까지 합치면 7년 안쪽에 307개가 있다.
맨 앞의 아홉 개는 이미 시작됐다고 봤다. 고객센터 상담원, 텔레마케터, 데이터 입력원, 데이터 라벨러, 번역가, 웹 퍼블리셔, 일러스트레이터, 대출·신용카드 모집인, 그리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다. 이 중 일곱은 직업의 사람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대체’로 판정했다.
분야로 나누면 쏠림이 뚜렷하다.
| 분야 | 87개 중 | 분야 전체 | 비율 |
|---|---|---|---|
| 사무·인사 | 7 | 15 | 46.7% |
| 미디어·콘텐츠 | 9 | 20 | 45.0% |
| IT·개발/데이터 | 17 | 39 | 43.6% |
| 금융·회계 | 12 | 31 | 38.7% |
| 디자인 | 7 | 22 | 31.8% |
| 영업·마케팅 | 10 | 44 | 22.7% |
| 서비스·외식 | 8 | 56 | 14.3% |
사무와 콘텐츠, 개발 분야는 직업의 절반 가까이가 3년 안쪽에 있다. 제조·생산은 92개 중 1개, 농림어업은 26개 중 1개뿐이다.
화면 위에서 끝나는 일
무엇이 이 직업들을 앞줄로 끌어냈을까. 우리는 직업마다 지금의 AI가 그 직업의 핵심 결과물을 사람 감독 없이 전문가 수준으로 얼마나 해내는지를 0점에서 10점으로 매긴다. 752개 전체의 중앙값은 4점인데, 87개의 중앙값은 7점이다. 가장 낮은 직업도 5점이다. 7점 이상을 받은 직업이 전체에 124개 있는데 그중 72개가 이 87개 안에 들어 있다.
이를 늦출 장치는 거의 없다. 87개 가운데 61개는 면허나 규제 같은 제도 장벽이 0점이고, 2점 이상은 단 하나다. 몸을 써야 하는 직업도 14개뿐이다. 결과물이 화면 위에서 완성되고, AI가 이미 그 결과물을 꽤 잘 만들며, 그 사이를 막아 줄 제도가 없는 일. 87개가 공유하는 조건은 이것이다.
해고장 대신 줄어드는 공고
그렇다면 ‘채용이 줄기 시작한다’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장면은 대량 해고다. 우리 기록이 가리키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 87개 중 56개는 직업이 남되 같은 일을 더 적은 사람이 하게 되는 ‘축소’로 판정했고, 16개는 판정 이유에 주니어나 신입, 신규 위촉부터 줄어든다고 직접 적어 두었다.
한국에서 이 순서는 제도와도 맞물린다.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 경영상 이유로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해고를 피하려는 노력 같은 요건을 갖추게 한다. 도구가 좋아졌다고 지금 일하는 사람을 곧바로 내보내기는 어렵다. 그 대신 퇴사한 자리를 채우지 않고, 신입 공고를 덜 낸다. 일반 사무직을 2029년 4월로 본 판정도 신입 사무직 채용부터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데이터 분석가(2028년 3월)의 판정 이유에도 주니어 분석가 채용부터 줄기 시작한다고 적혀 있다.
개발 직군도 다르지 않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2028년 9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백엔드 개발자는 2029년 4월이다. GitHub는 코딩 에이전트가 이슈를 받아 코드를 쓰고 풀 리퀘스트까지 연다고 설명하면서도, 병합하기 전에 생성된 코드를 반드시 검토하고 테스트하라고 안내한다. 코드를 치는 손은 줄어도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은 남는다. 문제는 그 책임을 맡을 사람이 원래 신입 시절에 코드를 치면서 길러졌다는 데 있다.
사다리의 첫 칸
우리가 이 기록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래서 사다리의 첫 칸이다. 경력자는 남고 신입은 막히는 흐름이 몇 년 이어지면, 지금의 주니어가 맡던 일을 거치지 않은 채 시니어가 되어야 하는 세대가 생긴다. 기업에게는 당장의 비용 절감이지만, 업계 전체로 보면 10년 뒤 책임질 사람을 키우는 경로를 스스로 끊는 일일 수 있다.
이제 막 이 분야에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냉정하다. 도구를 잘 다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예외를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져 본 경험을 작게라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87개 직업의 판정 이유에서 사람 몫으로 끝까지 남는다고 본 일이 대부분 그런 일이었다. 첫 칸이 좁아질수록, 두 번째 칸에서 할 일을 먼저 연습해 둔 사람이 그 문을 통과할 것이다.
참고 자료
-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기준법
- GitHub Docs: 애플리케이션 카드 - GitHub Copilot 에이전트
- YOU’RE NEXT 산출 방법
- YOU’RE NEXT 직업별 가이드: 일반 사무직 · 데이터 분석가 · 소프트웨어 개발자